INTERVIEW

The First Legend

지난 6월 23일, 이병헌이 할리우드의 중심에 섰다. 맨스 차이니스 극장 앞에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손과 발 도장, 그리고 ‘대한민국 배우 이병헌’이란 글귀를 남긴 것이다.

에디터 김나랑 글 황규영(LA 통신원) 포토그래퍼 Sean Park (SMDES1GN.COM), 조항래

 

 

 

 

6월 23일 늦은 아침, 이병헌은 웨스트 할리우드 한복판에 자리한 앤대즈 호텔에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드디어 오늘이다. 할리우드 영화의 역사를 상징하는 맨스 차이니스 극장에서 아시아 배우 최초로 핸드 프린팅 행사가 예정되어 있었다. 가벼운 가운만 걸친 채 앉아 있는 이병헌의 모습에서 긴장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그를 둘러싼 측근들이 호들갑스럽게 이날의 감회를 만끽하는 중이었다. 이병헌은 그들에게 음악을 틀어주고 농담을 건네며 흥을 맞춰주는 정도였다. 미국에서 자라고 한국에서 배우를 하는 육촌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능숙한 영어로 소감을 건넨 것이 다였다. “아직도 믿기지 않아. 꿈만 같고. 다만 내가 겪은 시행착오를 한국의 젊은 배우들에게 전해 줘서 그들이 세계로 나가는 데 도움이 됐음 좋겠어. And for me, this is just a beginning in Hollywood.” 그리고 그가 일어섰다. 이제 맨스 차이니스 극장으로 갈 시간이다. 6월의 로스앤젤레스가 으레 그렇듯 ‘룩이스트(Lookeast) 코리안 필름 페스티벌’이 열리는 토요일도 강렬한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이병헌을 연호하는 수많은 팬들과 한국 영화를 사랑하는 관중, 미디어들의 취재 열기로 맨스 차이니스 극장 안은 더욱 뜨거웠다. 이병헌은 국민 배우 안성기와 함께 이곳에 손과 발 도장을 남기게 된다. 완벽한 슈트 차림으로 할리우드 한복판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미소를 짓고 있는 두 배우의 모습은 한국인으로서 가슴이 뻐근해질 만큼 자랑스러운 것이었다. 이병헌이 이 자리에까지 올 수 있었던 결정적인 할리우드 출세작, <지.아이.조>의 프로듀서인 로렌조 디 보나벤투라는 이병헌을 “대단한 실력과 카리스마에 앞서, 믿을 수 있는 친구”라고 소개했다. 단상에 오른 이병헌은 유창한 영어로 “15년 동안 관광객으로 찾았던 이곳에 흔적을 남길 수 있어 대단히 영광이다”라는 소감을 전했고, 그의 팬과 영화 관계자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곧 이어 본격적인 핸드 프린팅이 시작되었다. 시멘트 패널에 이병헌은 마치 서예를 하듯 곧은 필체로 ‘대한민국 배우 이병헌’이라는 멘트를 새긴 뒤, 핸드 프린팅과 풋 프린팅을 진행했다. 그러곤 시멘트로 범벅이 된 손을 번쩍 들어보이며 이병헌 식의 환한 미소를 지었다. 여기저기서 플래시가 터졌고, 이 순간은 한국 영화가 세계 역사에 손 도장을 남긴 날로 기록되었다.

 

 

 

“처음 연기를 시작할 때 목표로 했던 꿈을 이제 후배에게 물려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본식 행사가 끝난 뒤, 한국과 일본·미국 등 세계 매체의 인터뷰 레이스가 이어졌다. 이 모든 것을 치러내고 VIP 라운지에 앉은 이병헌은 “방학한 기분”이라며 숨을 내쉬었다. 영어 스피치에 대한 부담감과 수많은 시선에서 벗어난 그는 한층 여유로워 보였지만, 그래도 아까의 감동이 몸 안에 계속 떠도는 듯했다. “큰일을 하나 끝마친 기분입니다. 이제 제대로 시작하는 거죠.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꾸준히 열정을 다해서 좋은 작품과 연기로 할리우드와 세계인을 찾고 싶어요.”
이날은 김지운 감독과 관객들이 함께하는 <달콤한 인생>의 상영도 있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관객들의 질문 시간이 이어졌다. 이병헌과 김지운 감독은 진지하게 작품과 연기 생활, 한국과 할리우드에서의 작업 차이점을 설명했고, 때론 농담을 주고받으며 관객들의 분위기를 띄웠다. 이병헌은 자신이 아직 미국에서 유명하지 않다며 켄 정(<행오버>에 출연한 한국계 배우)과 혼동되었던 에피소드를 말하는 등 겸손한 태도를 유지했다. 보다 못한 김지운 감독이 “<달콤한 인생>이 나의 대표작이냐는 질문에는 답할 수 없지만, 대표 배우가 이병헌이라는 것에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라며 그의 위치를 환기시켰다.
질의응답 시간이 끝난 후 레드카펫에서 다시 카메라 플래시와 인터뷰 세례가 이어졌다. 기자는 먼저 애프터파티가 열리기로 한 루스벨트 호텔로 가 잠시 휴식을 취했다. 정말 대단한 날이었고,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잠시 후 하루 종일 이병헌을 좇느라 물먹은 종이처럼 지쳐 있던 기자단의 한가운데로 상쾌한 공기가 훅 가르면서 이병헌이 걸어 들어왔다. “사진 많이 찍으셨어요?” 바쁜 걸음으로 애프터파티 장으로 걸어 들어가면서도 일일이 싱긋 웃어주는 그의 얼굴에서 예전 <아스팔트 사나이>의 패기 넘치는 젊은이가 겹쳐 보였다. 우리가 사랑하는 이병헌, 그는 그 모습 그대로 세계 무대에서도 당당했다. 배우 이병헌의 할리우드 역사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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