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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야말로 이 세상 모든 정보의 집약체이며, 선생님은 하늘과 같은 존재인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도대체 어디에 가서 멘토를 찾아야 하지? 평소 아무 준비도 안 된 대부분의 청춘에게는 그 또한 취업만큼이나 느닷없고 또 막막하기만 한 숙제가 되어버렸다. 그래서인 듯싶다. 요즘 방송 관계자들이 고뇌하는 청춘들을 위해 이런저런 멘토링 프로그램 만들기에 열심인 이유 말이다.
에디터 김로이스 글 김경(칼럼니스트) 일러스트레이터 이누리
멘토가 있냐고 물으신다면…
어린 시절 내게는 멘토가 없었다. 직계가족은 물론 사돈의 팔촌까지 다 뒤져도 대학 간 사람이라고는 달랑 나 하나밖에 없어서 무엇이든 나 혼자 결정해야만 했다. 한창 어떻게 살 것인가를 끊임없이 질문하고 모색해야만 하는 20~30대까지도 줄곧 그랬다. 그래서 늘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식으로 살았던 것 같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뭐든 되겠지. 안 되면 말고.’ 그런 정신으로 매번 겁 없이 부딪치곤 했다. 그래서 자주 엎어지기도 했고 나자빠지기도 했다. 무릎이나 정강이에서 피가 나기도 했지만 뭐 그 정도쯤이야 젊은 날의 필수 사양 같은 거지, 하면서 스스로 제법 의젓하게 다독이기도 했던 것 같고. 그래도 아쉬울 것이 없었다. 내겐 책이 있었으니까. 좀 거창하게 얘기하면 내 멘토는 늘 책 속에 있었는데 그분들의 명단이 얼마나 찬란하던지 교수 아버지를 둔 친구가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 예컨대 내 멘토는 버지니아 울프 언니고 또 니체 오빠였던 거다. 그 언니 덕에 누구보다 일찍 독립하여 ‘자기만의 방’에서 ‘자기만의 책’을 썼고, 방황할 때마다 니체를 읽은 덕에 ‘풍파는 언제나 전진하는 자의 벗이다’ 짐짓 허풍을 떨며 제법 비굴하지 않게, 좌우지간 전진하는 삶을 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아마 수전 손택이었지 싶다. 책이 자신에게는 “운명과 불운의 감옥을 탈출하여 더 큰 세계로 가는 여권 같은 것”이었다고 말한 게. 한마디로 나도 그랬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도통 책을 읽지 않는 걸로 알고 있다. 그렇다고 주변에 현명하고 신뢰할 만한 멘토가 있는 것 같지도 않고. 그냥 그 정도만 안다. 멘토가 중요하다는 거. 하지만 도대체 어디 가서 멘토를 찾아야 한단 말인가?
멘토로 넘쳐나는 TV 속 세상
KBS의 <두드림>도 있고 SBS의 <힐링 캠프>도 있고 얼마 전부터는 온스타일의 <소나기>도 시작됐지만 tvN의 <스타 특강쇼>만큼 각계각층의 멘토를 찾는 젊은이들에게 즉각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프로그램도 없는 것 같다.
특히 스타 토익 강사 유수연 씨 편은 정말 대단했다. ‘행동 없이 고민만 하면서 자신의 초라한 현실을 시대 탓, 사회 탓으로 돌리느라 밤잠을 못 이루는 청춘들’이 이 땅에 얼마나 많은가. 그런 그들에게 유수연은 “미친 듯한 노력이 없다”며 “문제는 너 자신에게 있다”고 직격탄을 쏘는 걸 보고 개인적으로 속이 다 시원했다. 노력하지 않고 남의 탓만 해온 20대라면 누구나 갑자기 따귀를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드는 통증을 느꼈을 거라고 믿는다. 특히 “다들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월급 받아서 살고 싶어 한다”고 지적하며, “노력하지도 않고 노력한 사람만큼 누리면서 살고 싶어 하는 것은 욕심이다”라고 꼬집는 부분에서 말이다. 나 역시 유수연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다시 20대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아무리 젊음이 좋다고 해도 다시 그 시간을 살고 싶지 않다. 눈곱만큼도. 그만큼 치열했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자기 경험에 비추어 뼛속까지 시리게 내뱉은 유수연의 독설이 근거 없이 나불거리는 섣부른 희망이나 긍정의 말보다 훨씬 인상적이긴 했던 모양이다. 방송 이후 <독설>이라는 제목의 유수연 씨 책이 30만 부나 팔린 걸 보면 말이다.
유수연만큼 강력하지는 않았지만 두고두고 곱씹을 만한 영양가 높은 ‘스타 강사’들이 그 밖에도 여럿 있었다. “지금 불행하다면 감사하자” 했던 박경림의 눈물 어린 진심. “월남전 참전 용사였던 아버지의 고통도 잘 몰랐던 사람이 누굴 미워하겠냐며”, “여러분도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장점을 하나씩 써보라” 했던 박경림의 충고는 놀랍게도 내게 달라이 라마의 <용서>라는 책을 생각나게 하는 힘을 발휘했다.
정찬우의 이야기도 눈물겹긴 마찬가지였다. 뇌를 다쳐 지능이 6세 수준이던 아버지가 집을 못 찾고 돌아다니다가 결국 아사했다는 이야기. 정말 충격적이었다. 그럼에도 정찬우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전파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것도 매우 즐겁게. 니체가 한 말이 떠오른다. “인간만이 이 세상에서 깊이 괴로워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웃음을 발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장 불행하고 가장 우울한 동물이 당연히 가장 쾌활한 동물인 것이다.” 그러니 스펙 때문에 괴로워하는 젊은이들이 그의 입장에서 얼마나 안쓰럽겠나. 스펙이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자신에게 맞는 낮은 일부터 하면 되는 거다. 정찬우처럼 된장 공장 근무, 탈 인형 아르바이트, 길거리 옷장사 같은 일이라도. 그것도 기왕이면 웃으면서.
배우가 본업이지만 가수, 시인, 복싱 선수, 상담가 등으로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김영호가 말하지 않았나. “가장 약할 것 같은 잽(jap)이 승패를 좌우한다. 커다란 한 방만 생각하지 말고 끊임없이 주먹을 뻗으며 시도하라”고. 내 생각도 같다. ‘꿈이 있는 사람이 아름답다’ 식의 뻔한 방송용 멘트를 들으면 화가 난다. 책상에 앉아서 공부만 하느라 경험이 일천한데,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이 뭔지 알 수 없는데 무슨 꿈을 가지라는 건가? “여러 분야에 도전하고 시도해봐야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알 수 있다”고 한 김영호 말이 맞다. 무엇이든 재밌을 것 같은 일부터 시작해보는 거다. 다행히 그게 적성에 맞는다면 유수연처럼 한동안은 아주 독하게 하는 거다. 적어도 2~3년은 죽었다 생각하고. 니체의 이 말을 기억하면 좋겠다. “언젠가 하늘을 나는 법을 배우려는 사람은 우선 서고, 걷고, 달리고, 오르고, 춤추는 것을 배워야 한다.” 사람은 곧바로 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도약할 수 있는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이 치열하면 치열할수록 더 멀리 날 수 있는 거고.
지극히 주관적인 멘토의 기준
한편 얼마 전 새로 시작한 온스타일의 <소나기: 소중한 나를 위한 이야기>를 보며 내가 PD라면 그 첫 번째 멘토로 장윤주가 아니라 오지은을 선택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오지은은 내가 17년 동안 패션지에서 일하며 만난 인터뷰이 중에서 ‘나보다 한참 어리지만, 나의 멘토가 될 만한 자격이 있다’고 느낀 거의 유일한 사람이다. 그만큼 매력적이고 배울 게 많은 친구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요행이나 운에 기대는 일도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힘으로 스스로를 구원하는 법을 보여준 ‘홍대 인디 신의 여신’이랄까? 게다가 여자들의 주특기라고 할 수 있는 비겁함이 전혀 없고 독립적이다. 심지어 내가 무려 열 살쯤 많을 텐데도 이 여자애처럼 좀 더 단단해지고, 동시에 좀 더 상냥한 여자가 되어야겠다는 결심까지 하게 만든다. 대단한 거다. 아마 이게 나의 가장 큰 장점일 거다. 나이가 많든 적든, 성공한 사람이든 아니든, 장사하는 사람이든 창작하는 사람이든, 만날 수 있든 없든, 죽었든 살았든 내가 배울 게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알게 되면 나는 어디서든 마음을 활짝 열고 열렬히 동경하고 또 예찬하며 배운다. 솔직히 그게 나의 유일한 밑천이 됐다. 예전에 가수이며 화가이고 또 배우면서 작가이기도 했던 김형태 씨가 한 말이 생각난다. “나를 키운 8할은 동경하는 대상들이었습니다.” 동경하고 예찬할 줄 아는 사람은 늘 먼 곳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든 비참할 수 없다. 스스로 멋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닮고자 노력하므로 조금씩 전진한다. 그러니 기왕이면 멘토든 롤모델이든 많이 만들어야 한다. 꿈이 변할 수 있고 변해야만 하듯이 멘토나 롤모델도 마찬가지다. 저마다 나이나 상황, 혹은 취향이나 가치관에 따라 각기 다른 영혼의 의지 상대를 가져야 한다. 다행히도 조금만 노력한다면 그 통로가 우리 주변에 무수히 널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거다. 굳이 이런 영화를 봐라, 저런 책을 읽어라 하지 않아도 말이다. 차라리 그런 주입식 충고의 프레임에 갇히지 않는 편이 나을 거다. 스스로 재발견하는 기쁨을 위해서도.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니체를 인용하며 끝내고 싶다. “세상은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조용히 돌아가고 있다.”
